
남명 조식, 내암 정인홍의 레토릭 사상
조맹기·조은숙
- 저자
- 조맹기·조은숙
- 분야
- 인문·교양
- 페이지
- 231쪽
- 정가
- 15,000원
- 출간일
- 2019년 2월
- ISBN
- 978-89-6511-245-7
- 판형
- 152×225mm
책소개
조선의 성리학이 지배하는 신분사회에서 다른 형태의 레토릭(rhetoric, 최근 커뮤니케이션) 학문세계가 긴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를 수용하는 지식인 사회는 긴장했고, 사회는 변동의 도가니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패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 사회로 급속히 전진하고 있었다.
개인의 극기(克己)로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구가할 수 있었다. 이 사회는 공론(언론자유)을 말할 수 있었고,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원류(源流)를 말할 수 있었다. 패거리 언론, 나팔수 언론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경(敬)’, ‘의(義)’, ‘성(誠)’을 통해 개인과 국가는 과거, 현재, 미래를 엮게 된다.
조식(曺植), 정인홍(鄭仁弘), 이이(李珥), 정약용(丁若鏞), 서재필(徐載弼), 장지연(張志淵), 안재홍(安在鴻), 천관우(千寬宇) 그리고 현대 언론인의 경세학(經世學), 즉 레토리션으로 엮게 된다. 좀 더 설명을 덧붙이면 내적 커뮤니케이션과 매스 컴퓨니케이션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계가 된다. 내적 커뮤니케이션은 ‘마음’을 연구하는 것이고,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신문, 방송 등 기술을 매개로 콘텐츠를 증폭시킨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지구촌의 형성은 융합적 미디어의 경향을 더욱 두드러지게 표출시킨다. 다른 말로 현대 《독립신문》 연구만으로 현대 언론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없게 된다. 그 원류는 더욱 오래 전에 발아했다는 측면이다. 이 현상들은 외세에 의한 역사의 단절된 삶을 영위함으로써 어떤 연관성도 없는 것처럼 따로따로 삶을 영위했으나, 실제 그렇지 않은 역사의 흐름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면 ‘經’은 유교의 경전을 이야기하고, 世는 세상에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합쳐서 경세학은 사회정책론이다. 이성규는 “경(經)〔이념〕을 역사〔史〕에 붙여 경사(經史)이다.”라고 했다. 사(史)는 계속 바뀌는 것이고, 경(經)은 별로 바뀌지 않는다. 이 둘이 합치면 국가운영원리, 즉 사회정책론이 된다.
남명은 관직을 갖지 않았으나, 경세론으로「을묘년에 사직하는상소문(乙卯辭職疏)」(1555, 명종10년)을 비롯하여, 3개의 상소문이 있고, 내암은 「사영천군봉사(辭永川郡奉事)」(1578년, 선조11년)를 시작으로 많은 상소문(上疏文), 차자(箚子) 등을 남겼다. 더욱이『내암집』에는 기존의 문집과는 달리 시문이나 학문의 이론에 대한 입장을 밝힌 글보다는 상소문이나 봉사 등 정인홍의 정치적 입장을 밝힌 글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내암은 장령, 대사헌 등 제도권 언론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상소가 많을 수밖에 없다. 『내암집①』은 “장령, 대사헌 등 감찰직을 수행할 때는 철저한 엄격성을 보였으며, 당쟁 시에는 반대 정파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라고 했다.
한편 인조반정이 1623년 일어나면서, 사림의 득세한 시기는 지나갔다. 즉, 은일(隱逸)의 사대부는 인조반정을 기해, 남명과 내암이 속한 북인(北人)의 사림(士林)이 속한 신분 집단의 근거를 자체를 잘라버렸다. 그러나 동강(東岡) 김우웅(金宇顒, 1540~1603),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등 실학자들이 그들의 학문을 전승했다.
목차
- 머리말
- 1장. 조식과 정인홍의 레토리션 기본이해
- 1) 논의의 의미
- 2) 남명과 내암의 상소커뮤니케이션
- 3) 조식, 정인홍의 경험 중시 세계
- 2장. 상소 레토릭
- 1) 레토릭의 행위
- 2) 레토릭 상황과 공론의 내용